📕 채식주의자 / 한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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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에게 과분해.
결혼 전에 그는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신의 선량함, 안정감, 침착함, 살아간다는 게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아 보이는 태도...... 그런 게 감동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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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겠지. 예전부터 난, 누군가가 도마에 칼질을 하는 걸 보면 무서웠어. 그게 언니라 해도, 아니 엄마라 해도. 왠지는 설명 못해. 그냥 못 견디게 싫은 느낌이라고밖엔. 그래서 오히려 그 사람들한테 다정하게 굴곤 했지. 그렇다고 어제 꿈에 죽거나 죽인 사람이 엄마나 언니였다는 건 아니야. 다만 그 비슷한 느낌. 오싹하고, 더럽고, 끔찍하고 잔인한 느낌만이 남아 있어.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인 느낌, 아니면 누군가 나를 살해한 느낌, 겪어보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할...... 단호하고, 환멸스러운.. 덜 식은 피처럼 미지근한.
무엇 때문일까.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져. 내가 뭔가의 뒤편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손잡이가 없는 문 뒤에 갇힌 것 같아.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걸 이제야 갑자기 알게 된 걸까. 어두워. 모든 것이 캄캄하게 뭉개어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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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 요리 앞에서 입을 닫고, 그 외의 음식 앞에서 입을 여는, 사뭇 단순하고 절제된 행위는 어째서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가?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준수해야 하는 식탁의 법에 그녀가 어떤 식으로든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 불편함을 자아냈을 것이다. 그녀가 남편과 함게 회사의 부부동반 모임에 가서 자신의 유두만큼이나 '두드러진' 존재로서 자리를 지켰던 장면에서처럼, 법의 충실한 옹호자들은 법의 체계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이들이 품고 있을 법에 대한 불신을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범법자들을 부르는 수많은 세부명칭이 있는 이유는 그들을 법의 어휘로 호명할 때 그들이 지닌 불온성이 '이해가능한' 대상으로 순화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단지 고기를 먹고 싶지 않아서 먹지 않은 것일 뿐이다. 그저 몸이 일러주는 대로 소박한 원칙을 실천했던 그녀에게, 사람들은 '채식주의자'라는 이름표를 달아주려 했다. 그녀의 시간과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누군가가 실천하는 행위와 사람들이 그것의 속성을 규정하는 행위 사이에는 결코 해소될 수 없는 간극이 굳게 버티고 있음을 지켜보게 된다. '주의'라는 말은 대개 특정 대상에 대한 강력한 신념을 전제로 한다.이런 점에서 그녀는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자연스럽게 '고기를 먹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렸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왜 고기를 먹지 않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타인을 이해할 수 없을 때 그/녀를 그저 자연스럽게 움직여가도록 놓아주는 것도 이해의 방편 중 하나이다.
생각보다 타인의 습성과 문화에 대해서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채식주의자'는 사람들이 그녀의 행위를 이해하기 쉬운 속성으로 환원한 호칭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녀를 채식주의자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녀가 고기를 먹지 않게 된 이유이다. 현실에 파동을 일으킨 것은 그녀의 꿈이었다. 꿈은 다른 서체(이탤릭체)로 기록된다. 꿈의 언어와 현실의 언어는 다소간 다른 층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흐릿하게 번진 그녀의 음성은 그녀 자신에게도 닿을 수 없을 것처럼 낮고 조용하게 들려온다. 추상적인 이미지에 가까웠던 꿈은 시간과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차 구체적인 트라우마의 실체에 근접해간다.
그녀를 식육의 세계로부터 잘라낸 것은 아버지의 잔인함인가, 남편의 잔인함인가, 아니면 자신을 포함한 인간 모두의 잔인함인가. 그녀를 물었다는 이유로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은 개에 대한 죄의식은 꿈의 기저에 분명하게 자리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그녀를 채근하고 두렵게 하고 불편하게 했던 남편에 대한 책망도 꿈속에 섞여든다. 고기조각처럼 둔탁하고 칼처럼 반짝거리는 불안감.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야수성을 감지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처벌의 한 형태로 '자기파괴'를 선택한다. 사람들은 농담처럼 '남의 살'이 맛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남의 살'을 베어먹고 물어뜯는 식육의 행위가 지닌 파괴력에 전율한다. 그녀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다른 생명체를 먹는 것에 대한 모종의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자신의 세포 하나하나를 이루고 있을 '남의 살'을 몸피에서 덜어낸다. 과잉소비의 쾌락을 위해서 수많은 생명체를 공장 구조에서 '생산'하는 것을 윤리적으로 비판하는 행위가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시대에 말이다. 팽창의 시대에 축소를 택한 그녀에게 남은 일은 시대착오의 의미 그대로, 살아 있는 화석이 되는 것뿐이다.
그녀가 인간에서 비인간으로 '퇴행적 진화'를 하는 과정은 흡사 일상 속의 고행처럼 보인다. 이 고행자에게는 심오한 각성을 하겠다는 형이상학적 목표도 없다. 그녀는 그저 꿈이 시키는 대로, 몸이 시키는 대로, 시간 속에서 풍화작용을 시작하는 것일 따름이다. 대부분의 신비가들은 일상과 몽상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광기를 경험하게 된다. 진리를 향한 명철한 의식은 살쾡이의 눈빛처럼 위협적으로 빛난다. 세속에서 경험하기 힘든 절대성의 아찔한 경지를 맛본 자들의 눈빛은 똑바로 미쳐있다. 영혜, 그녀의 말과 몸짓은 똑바로 미친 자만이 담지할 수 있는 명료한 광기를 향해 나아간다. 영혜, 그녀는 어린아이에 가까워졌기에 비가시적인 세계의 진실을 엿볼 수 있었으리라. 집에서 집으로, 집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병원으로, 죽음의 끝을 향해 나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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